제 7회 사랑의 군대-Culture Night in Paul Band First Nation
어제 13일 금요일 밤 사랑의 군대 culture night이 폴 밴드에서 있었다. 청년봉사팀들과 단기선교팀의 섬김속에서 여선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와 청년들의 공연 그리고 예배와 기도가 있었다.
2007년 6월 11일스티븐 하퍼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7월 이맘때쯤이면 그들의 아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캐나다 원주민은 100만명 가량, 미국은 200만가량이라고 하는데 610개 이상의 공식적인 Band에 캐나다 원주민들은 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First Nation(원주민: 피가 섞이지 아니하고 원주민 보호구역에 사는 자들)이고, Métis(혼혈: 프랑스와 영국에서 들어온 모피상인들과 캐나다의 원주민 여자사이에서 난 후손들로서 주로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하였고 주로 모피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에 약 20만명정도 살고있다). 그리고 5만정도가 Inuit(에스키모: 주로 북극가까이에 약 5만정도 살고있으며 일명 유럽 사람들에 의하여 Eskimo 라고 불림)
모두들 알고 있듯이 지난 역사를 통하여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고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의도하에 원주민을 몰락시켜 왔는데 불행하게도 교회가 그 한가운데 있었고 따라서 백인들이 세운 교회는 이미 십자가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수많은 원주민들은 백인의 총에 쓰러지면서 “백인의 눈을 믿지말라”고 외쳤다. 그들이 받은 상처와 고통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백인에 대한 깊은 증오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오늘 이땅의 원주민들은 가장 불명예스러운 3대 기록을 소유하고있다.
가장 높은 자살율ㅡ 가장 많은 재소자들ㅡ 가장 많은 매춘부들
1800년대 백인들은 인디언을 그들의 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해 강제 교육 정책을 실시했다. 인디언 공동체를 붕괴하기 위한 백인들의 주된 수단 중 하나였다. 동화정책은 주로 기숙학교(Boarding School) 제도를 통해 진행됐는데, 그 목적은 "인디언을 죽이고, 인간을 살리는 것(kill the Indian, save the man)"이었다. 기숙학교 제도는 연방 정부의 정책이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종교 기관에 의해 운영되었다
가족을 떠나 강제로 학교로 이주 당한 어린이들은 향수병에 시달렸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들이 빈발했다. 기숙학교 어린이 묘지에 쓰인 문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Death was the only way you could get home…….”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죽음뿐)
이제 우리는 약100년전 이 땅 캐나다에서 한국까지 온 선교사들한테 영적으로 빚진 것을 이들 원주민을 통해 그 빛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